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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日本은 百濟다.(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一雲 2019. 1. 16. 16:26







일본 고류지(廣隆寺) 반가사유상을

 두고 일찌기 독일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지상의 시간과 속박을 넘어서

달관한 인간 실존의 가장 깨끗하고,

가장 원만하고,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고 예찬했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꽤 큰 돈을 주고

산 사진 세트 중  반가 사유상

입니다.



지금  일본 만엔 지폐권에 나오는

쇼토쿠태자(聖德太子)

 603년에 교토의

고류지(廣隆寺)를 세웠다고.


교토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랍니다.
이 절에 엄중히 보관된

반가사유상은

 7세기 초, 즉 아스카(飛鳥)시대의

 불상으로 현재

일본 국보 1호랍나다.


(소생은 우리 것을 

일본이 가져갔다고

배웠는디,,,

소생 기억에

편파성이 있나?)
----- 


'일부분이 수리된 상태이지만,

원래 우리 적송(赤松)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아스카시대의 목조 불상은

대부분 녹나무로

 만들어졌는데,

이 반가사유상만은

적송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보 83

금동 반가사유상과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을

일본으로 가져갔거나,

아니면

우리나라 금동 반가사유상을

 본떠 일본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둘은 때려야 땔 수 없는

어떤 단단한 줄로 서로

연결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역에서 내려 역무원에게 묻고

불안해서 공사장 작업원에게

물어 고류지(廣隆寺)의 넓은

주차장에 왔다.



추색이 완연한 경내







매표소다.

교토의  그 많은 절,신사 중

몇 안 되는 입장료를

받는 절이다.

 실례지만 , 아래 꼬질한

팜프랫하고 입장권 한 장!


꼬질하다고 한 건 우리 돈 8천원이나

 입장료를 받으며 국보 1호인

사유상의 선명한 사진이라도

실어 놔야할 것 아니겄소!

(무신 그림자 놀이 하는 컷이

아니고,,,,)



이 자리에서 관심

1도 없는

친구는 '되도록 찬찬히

귀경함시로 나오란다.

경내는 금연지역이니

밖으로 나가 실컷

꼬실려 댈 희망에 차서


하지마라, 하지마라 그리고

또 하지마라!

종교의 계율은 하지마라 다.

허면?

죄를 짓는거고 벌받는다.


저 건물 영보전(靈寶殿)

안에 소생이 보고자퍼 온

반가사유상이 있다.



건물 둘레의 가실 풍경이

 차라리 예까지 온 보람이다.





드디어  靈寶殿 -

긍게 보물 같은 영을 뫼시는 대궐.

,,,,,,,,,

입구에는 절대 정숙하라!

그옆에 자잘하게 탈모며

신발은 벗어라!

우와~ 뚜껑 열리게,,,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다.

어쩌고 저쩌고

그러고도 안내인인지

울 유격 조교 비스므리

한 자가 끝까지 실내까지

설명(감시라야 맞다.)

한다고 따라붙는다.

행여 몰카 플래시 때문인지

(소생은 그리 생각켰다.)

실내는 어두웠다

실내는 사방으로  배치된

많은 불상 앞에 흐릿한

촞불 몇개만 켜져있었다.


미음자 형으로 빙 둘러선

정면 중앙에 반가사유상이

있었다. 나머지 여나무 개는

괸심도 없어

반가 사유상만 유심히 봤다.

그 미소!

그 평안!

이제 소생은 알게 됐다.

.........

이 상은 우리 꺼구나!

소생은 이 분위기로

그리 느꼈다.

안에서 촬영을 못하게  한다고

나오면서 매표소에서 어필하자

사진 6장을  사란다.

가격도 작지 않았다.

제기랄 노무~

다시 만난 친구에게

핀잔을들었다.

'바가(馬鹿)냐 그런걸 사게!'


아래 사진들이다.

중앙은 사진셋트 포장 봉투.


아무리 봐도 식상하지

않고 맴이 편해진다.




미륵보살이란다.




쇼토쿠태자(聖德太子)이고

즈그들은 조명 환허게 맞춰

선명하게 찍어 놓고는 ,,,,

손님인 관광객에게는 판다.


이는 '을'의 '갑'질이다.



이 따위 홍연이야

대전 연꽃마을에

가면 백년에 치어

쪽을 못 쓴다.





정문으로 나왔다.


정문에서 기양

찍고 말 것을

괜시리 주차장으로

가설라므네 ,,쯧쯧











,,,,,,,,,,

  

이쯤해서  우찌하야 '일본은 백제다' 란

명제가 옳은 지, 우째서 고대 일본문화는

 전적으로

백제에 의한 것인지 중요한

고대 역사적 대사건이 663년

울 동네 군산 금강입구에서

있었단다. 


 고대 4개국이 국운으 걸고

뒤엉켜 벌어진 그야말로

 세계대전을 알고 가야만

합니다, 그거 '나는 알아

'하시는 분덜 빼놓고(?)

 이번 여행 준비 때 자료를

 모으다가 알고서

소생도 중딩 고딩 때 이

 역사적  백강전투에 대해

왜가 도우러 왔다 정도지

소상히 배운 기억이 없어서다.



  

백강전투(백강구전투

- 백제 멸망을 되살리려던

백제 부흥운동의 세계대전

 

백제 멸망의 해는 660년입니다.

그러나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으로

인한 전쟁 이후

 진짜 최후의 역사적 전투가 또

있었는데, 그 전쟁을 백강전투,

혹은 백강구전투라고 합니다.

    백강전투는 백제, , 신라, 당이

벌인 동아시아의 세계대전

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백제는 완전히

 소멸하고

왜의 정세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백강전투를 중국은 백강구전투

 일본은 백촌강전투라고 한답니다.

 백강구는 지금의 군산항의

금강 입구로 여겨진다고,,,.

일본의 역사교육에서 백강전투는

 한국보다 자세히 다루어집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소홀하게

 다루는 편입니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소생 때는

아예 풍왕자와 흑치상치를

중심으로 백제부흥운동이 있었다는

 정도였고 백강전투는

소생은 사십대 중반에 친구의 일본인

아내에게서

상세하게 들으면, 엄청 생소하게 들려

에이 뭔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혔지요. 내 참!)

 백제인들은 왜의 지배층을

차지하고 있어,

왜의 입장에서 백강전투는

국운을 건 대규모 참전이었습니다.

나당연합군의 침략 때는 의자왕을

 돕지 않던 지방 호족들도

지원을 하며 한때는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부하의 배신으로 의자왕이

잡혀간 것이므로 아직도

 백제는 200여 개의 성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당나라와 신라 문무왕은

백제부흥군의 수도인

 주류성으로 협공을 가해 왔습니다.

당나라는 백제의 태자였던

부여융(풍의 형)에게 수군을 주어

 공격 병력을 더 보내왔습니다.

 663,

당과 신라 연합군뿐 아니라

자신의 형인 부여융마저 당나라 편이

되어 쳐들어오자 부여풍은

 다급해졌습니다.

부여풍은 일본에 거주할 때

 왜의 실권 가문인

소가씨에게 지원군을

 요청했습니다.

소가 가문도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까닭에

 백제의 멸망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마침내 왜는 큰 결단을 내립니다.

임진왜란에 버금갈 정도의

병력을 파견해

부여풍을 돕기로 한 것입니다.

드디어 4개국 이상이

 참전하는 동아시아 사상 최초의

세계대전이 백강에서 벌어집니다.

왜는 수백 척의 배와 4만여 명의

병력을 백강 지역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당과 신라의 수만 명이

백강전투에서충돌하게 되니

거대 규모의 동아시아

세계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백제, 신라, , 왜의 총 병력은

20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10만 명이라는

설도 있답니다.

 

결국 백강전투의 패배로 장왕은

고구려로 도망가게 된다네요.

 어떤 이들은 663년 백강전투를

백제의 실질적인

 멸망의 해로 보기도 합니다.


이후 백제 유민의 대규모

일본 망명이 이루어집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백강전투로

엄청난 변혁기를 맞이한 셈입니다.

백강전투 이후 왜는 최초로

율령을 반포하고 이름도 왜에서

일본으로 바꾸며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게 됩니다.

왜가 사력을 다해 백제를

구하려 했던 것은,

왜가 백제의 나라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랍니다.

. 이미 백제 왕족의 영향이

있었던 왜였지만,

 백제 유민의 대거 유입은

사회적인 큰 변혁을 주었습니다.

 

(키스세븐(www.kiss7.kr)에서 요약발췌


씁쓸한 기분을 털려

잰걸음으로 나왔습니다.


---------


봐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

다음 여정은 일본의

최대 마쓰리(축제)

기온 (祗溫)마쓰리의 기원이 된

하스카(八坂)신사을 찾아갑니다.

출처 : "산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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