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1600년대로
훅~ 바꿔
若無湖南 是 無國家 의
백제 땅 호남과 호남인이
성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死卽生, 生卽死의
연연한 백제정신으로
풍전등화였던 조선을 지켜냈다.
공에 대한 마구잡이 분노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만행 증좌인
우리 조상의 코무덤(귀무덤이 아님)을
찾았습니다.여기까진 타이틀
'日本은 百濟다.'가
부끄럽지 않은데,,,
---------
일제가 그토록 내세우는
일본魂의 근거인 大和魂
(야마토 다마시) 도
따지고 보면
고대 야마토 시대의 중심지인
大和(야마토)가 지금 탐방하는
교토,오사카인
近畿(킨키)라고 하던데 ,
왕인 박사와 백제가
전한 한학을 그들만의 단결과 의리
상하의 위계 질서의 엄중함 등을 강조한
독특한 일본정신 문화로
갈고 닦은 것이란 게 소생의 필이였다.
.............
또다시
300년 후우욱~ 뛰어넘어
1900년대 소생에겐
옳은 표현이다고 느끼면서도 생소한
을사늑약으로
(우리에겐 을사보호조약
이라고 가르쳤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 최대 국치에
타이틀 '日本은 百濟다'가
부끄러워 ?을 붙였습니다.
을사늑약도 정유재란 때 鼻塚,
즉 코무덤과 긴밀히
연결된 장소로 3백년 전의 즈그들
조상의 조선 정복의 실패의 만회를 구실로
이 무덤이 征韓論 의지결집의
상징이 됩니다. 그때울 얼간이 조정(?)은
이 충무공이 살린 백제정신은 커녕
알아서 기어 나랄 매국했으니
어허~참네!
............
그러나
나라를 잃은 그 모멸의 시기에도
숱한 독립투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여서 ,,,,
마지막으로 잘 아시는 일제의 저항시인
서시의 윤동주님과 정지용님을
찾으려 갑니다.
-일본의 국가 지정 사적인 코무덤-
임진왜란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왜군이 전리품을 확인하기 위해
목 대신 베어갔던 조선인 약 2만 명의 코를
묻은 교토의 무덤이다.
(그 외 많은 지역에 코무덤이 있고.수급=코
숫자의 영수증을 써줬단다 .)
註 :이하 코무덤, 鼻塚의 야그는
'남도일보의 전라도 역사 이야기'에서
발췌, 소생이 약간의 썰을 붙인 것입니다.
무덤 위에 불교의 고린토[五輪塔]라
불리는 석탑이 세워져 있다.
왜군은 명량 참패의 분함을
진도, 해남 지역 조선백성들을
죽이면서 풀었다. 당시
전라도 해안지역 인구의 삼분의 일이
정유재란 때 죽임을 당할 정도였다.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정유재란 후 길거리에 코 없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적혀있다고
아~! 아~!
코무덤 앞의 석책들.
일본 막부는 조선정벌을 소재로 한
공연극(가부키)을 만들어 주민들로
하여금 즐기도록 했다.
조선정벌 관련 가부키를 공연했던 극장과
배우이름이 새겨져 있다. 1592년 조선을
침략 한 뒤 300년이 지난 때
일본 우익인사들은
조선정벌을 주장하며 征韓論을 확산시켰다.
교토 코무덤은 일본 극우인사들이 모여
조선정벌의 야욕을 다짐하는 곳이었다.
우리 부끄러운 시대---
코무덤 앞에 놓여 있는 이총 안내문.
교토시청은 공원안내문 ‘귀무덤’(耳塚, 미미즈카)
이라고 적어두고는
가로 안에 코무덤(鼻塚, 하나즈카)이라 덧붙였다.
이곳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부터 코무덤이라 불렀지만
에도시대(1603년~1867년) 초기
유학자 하야시라산(林羅山)이
코무덤은 너무 야만스러우니 귀무덤이라고
부르자고 해서 귀무덤으로 바뀌었다.
메이지 시대 도쿄대학 호시노 박사는
그의 논문에서
‘교토 코무덤은 귀무덤이 아니라 코무덤이다’
라고 밝혔다.
교토시가 안내판에 쓴 내용 중 마지막 문장
'
-상략 -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의
끈질긴 저항으로 패퇴하므로써 막을 내렸으나
전쟁이 남긴 이 코무덤은 전쟁이 남긴 조선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 오늘날까지 전해
지고 있다.
이 안내문 끝맺음 문구로
잠시 혼돈스러워졌다.
교토시란 일본 관청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성을 없애고 '히데요시가'로 하칭쪼고 ,
위의 밑줄친 부분은 사실을 사실로 써서
조선민중의 편에서 전쟁 반대의
뉘앙스로 끝낸다.
???
적혀진 그대로 받아들이자!
조선병사와 의병 그리고 일반 백성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를
보여주면서 정벌의 위업을 과시했던 것이다.
코무덤을 만들고
무덤 위에는 고린토(五輪塔)라 불리는
오층석탑을 얹었다.
무덤위에 육중한 석탑을 올리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원혼들이 일본 땅으로 나오지
못하게끔 취한 조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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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윤동주님을 뵈러 간다.
윤동주님과 정지용님의 시비를 세운
긴키 지방에서 교토대학 다음의 명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정문
'관서지방을 대표하는 명문사립대학교
도시샤대학의 전신은 그리스도 신교개혁회파의
청교도였던 니이지마 죠 (新島 襄)가
1875년에 설립한
도시샤영어학교(同志社英学校)입니다.
건학정신은 그리스도교 정신에 근거한
「양심」입니다.
니이지마 죠는 건학의 목적으로
<양심을 수완으로 운용하는 인물>의
육성을 내걸었습니다.이 양심교육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교육이념으로
「그리스도교주의」「자유주의」「국제주의」를
내걸고, 이를 통하여 「한 나라의 양심」이
되는 인물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왜 두 시인이 이 대학을 선택하여
한글문학 모임을 맹글어 일제에 항거하다
윤시인이 옥사를 당했는지 짐작이 갔다.
정문 수위에게 물어 위치 안내도를
받고 들어서니 미션스쿨 분위기의
교회와 첨탑종이 안도감을 준다.
개신교 교회가 거의 없다 할 정도의
이나라에
야들 개신교 정립과 활동에서
문뜩,
우리 개신교(?)의 현주소가 떠올랐다.
독립영화 제목처럼
'그건 교회가 아니다.'이다.
고 법정스님의 글이 생각켰다.
' 종교는 권력의 핍박에
저항할 때 그 본질에 가까워 지고,
돈과 권력을 등에 업을 때
사회에 악행을 저지르고
철저하게 부패, 반종교적이 된다.'
대략의 기억이지만,,,
시비 좌우로 식재, 관리되는
우리꽃 무궁화 나무
고맙습니다, 도시샤 대학!
철저한 반디지털 친아날로그인 친우에게
사진을 부탁했더니만 흔들렸다.
정작 우리 나라 태극기는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다.
전적으로 소생이 눈찌프린 감상이지만
한 정치적 집단이
전유물인양 몸에 아무렇게나
휘둘고, 흔들고 그리고 도로에 버리고,,
한낮 일개 정치집단의
이름이나 집회의 이름 앞에
태극기란 이름을붙여 경건성과
감동을 훼손시키는 행위는
작게는 천박하고,
크게 보면 나라의 품격, 즉
국격을 형편 없게 내팽개치는 거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정확한 언어를 사용해야 할 울 언론
그런 단어를 사용, 기록 전파하는
매스콤에 이르러서는,,,,
참배하며 문득 떠올라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서시의 첫절을 한참 생각해봤다.
소생이 봤던 용정중핵교와 연대 구내에
윤동주님의 시비가 있다는 건
아조 자연스러운건데
가해국의 땅에
시비가 세워질 수 있다니...
아항~!
이핵교의 건학정신이 그리스도교정신에
근거한 「양심」그것과 매칭되네,,
바로옆 정지용님 시비에 조각된 시는
(1) 출발편에서
아라시야마의 '카모가와 鴨川'인데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정지용 하면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엣이야기 지즐되는,,,'
의
향수지잉
앙그려?
야들 깔끔함과
질서정연함은
인정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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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약 1,300년에 걸친 한국과 일본에 얽힌
역사기행을 마치고 귀국 전날
소생이 성의로 아주 오래된
산 속 그윽한 료칸을 잡았습니다.
역무원은 단 한명
역 바로 아래 도보 3분 거리의 숲으로 에워쌓인 료칸
확실이 공기가 싸하니 맛있다.
건배! 간빠이!
오메 지구촌 곳곳에 알려진 방문인들의 국기가,,,
그 옆 창문이 완죤 우리 꺼네 물어보니
이 곳 회장이 한국광인데다 한국 골동품을
수집헌데여!
소생도 꾸욱 꽃았다.ㅎㅎㅎ
이 친구의 현찰 빼놓고의 일상 필수품
내년에도 둘의 숨쉬기 운동이
그대로 계속되먼 만나잔다.
오랏이 그때까정 잘 지내라!
고생시켜 미안타.
소생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한국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한국인이다.
긴 글과 사진 끝까정 봐주셔서
증말 고맙네유,
참말로 감사헝만요
(배경음악 내나라
내겨례는 폰에서 안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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