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시당초,
요전에 갔다온 규슈의
여행사진을 자랑삼아 대학동기 카페에 올려
그 친구들 부아를 긁어 놓은게 잘못이였다.
이민간지 30년이 넘은 놈이 한국으로 처들어 와서는
'협박 반, 애원 반'으로
그 코스대로 인도하랜다.
미국에 갔을 때 놈에게 단단히
진 빛도 있는터라
옴싹 달싹 없이 3박 4일의 고행을 해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은 곳을 3번 (후쿠오까는 5번)이나
돈들여 가는 '또라이'가 어디 있겠는가!
벳부보다 낫다고 꼬드겨
하루 코스는
조선통신사의 흔적이 있는 혼슈의 야마구치현을 갔다.
이번 일로
'봐서 남의 기분이 썩 좋지 않을 자랑(?)섞인 여행기'를 올릴까 말까라는
갈등이 생겼고, 또 하나는 '공짜는 없다. '의 엄연성을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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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숙제같이 보내봅니다. ㅎㅎ
심기 불편하시다면 해량해주시길...
이번은 광양이 아닌 부산 출항.
우리 배 성희호를 타고,
밤바다를 가르며 대마도를 지나,
드뎌 도착한 시모노세끼 !
-시모노세끼 下關의 지명 유래-
도꾸가와가 일본의 동경, 즉 에도로 서울을 옮기기 전까지
막부의 상업,행정 중심은 오사까였고
'관몬대교' 밑을 지나면
'세토' 內海 로 들어서고 다시 위로 오르면
태평양 쪽의 교오토, 오사까에 닫는다.
따라서
일본 중심지의 아래에 있는 관문의 뜻이란다.
저 다리가 규슈와 혼슈를 잇는관몬대교
시모노세끼 항에서 차로 20분여 관몬대교 아래 쪽, 동네 이름이 '가라토(唐戶 )
( 이 지명의 발음에서도 우리 삼국시대의 흔적이 있단다.
가라는 가락국의 가라에서 온 것이다고, )
여기가 옛날에는 큰 나루터였고 조선통신사가 대마도에서 쉬고
두번째로 상륙하여 쉰 곳이
이 나루터 바로 건너의 아까마신궁(赤間神宮)이라고..
'한일의원연맹 회장 김종필' 이름으로 세워져 있는 유적비.
나루터 앞 길 건너의 아까마진구(赤間神宮 )
12C 일본의 전국시대.
여기서 큰 전투가 벌어지고 이 지방의 번주요,
어린 천황 안토쿠의 외가인 헤이케(平家)가
패하자 나루터 앞 바다로 어린 천황을 안은 외조모와
많은 시종들이 바다에 들어 죽었단다.
따라서
이 신궁은 안토쿠 천황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인 것이다.
신궁박물관에는 등이 사람 얼굴 모습을 띈
앞 바다에서 잡히는 게를 진열하고 있었다.
어린 안토쿠 천황의 바다 속 죽음의
원혼이 게등에 현신한 것으로 믿고 있단다.
신궁 옆쪽- 어린 천황의 묘소(?)
아까마 신궁에서 차로 40분여의 죠후(長府)의 '사무라이 마을'이다.
야마쿠치현은 막부시대 때 이름이 죠오슈(長洲 )였단다.
그러니께 죠오슈의 수부란 말인지.
죠오슈 출신 志士들을 주축으로 막부시대로부터
명치유신을 주도하여
일본을 근대문명국가로 이끈다.
그 단초를 연 혁명가가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이다.
그가 도꾸가와막부를 상대로 연 3일간 목숨을 건
끝장 토론 끝에 협상을 승리로 이끈 가옥이다고,,,
지금은 아주 고즈넉하지만 가옥들은 옛날 모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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