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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향기 - 이퇴계 -

一雲 2018. 1. 2. 17:04



 유성룡 대감의 스승이며

조선 성리학의 정점이요,

영남학파의 태두인

退溪 이황 선생을 만나 뵙고자  

도산서원으로 가기 앞서서,,

 안동 대표적  전통한옥체험 시설로

인증된 溫溪 종택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퇴계 退溪

 - 물러나서 계곡에 머문다?.-

온계 溫溪 

- 뜨시고 따땃한  계곡에 머문다?.-

두 분?

 뭔가가 심상치 않은 관계가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온계(溫溪) 이해 (李瀣)는 

퇴계 이황형님이시라 하고요,

 을사사화에 희생되었다는 군요

시절 인연 있어 그 온계종택에서

해피 만땅, 분수 초오버의 

하룻밤을 유하게 되었시유.









위 三栢堂은 온계 선생이 사시던 종택이다.

온계 선생이 성균관에서 공부하던 약 5년 동안 퇴계선생이

모친을 모시고 살았던 유서 깊은 곳이었으나,

온계 12대손인 이인화(선성의진제 3대 의병장)의 의병활동 시

이 종택을 의병소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왜군이 종가를 불태웠단다.


최근 2005년 12월 25일 종택복원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국가보훈처, 경상북도, 안동시의 지원과 자손들, 친지들의

도움을 받아서 옛 가도를 토대로 복원 후,

2011년 5월 5일 종택이 불 탄지 115년 만에 낙성식을 가졌다. 


온계종택에서는 종택의 문화와 선비정신,
안동의 의병활동과 혁신 유림의 독립운동 정신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가 있다.
(안동시 문화관광과 홈페에서)










양반가에 어찌 술과 여흥이 없으랴!
연산군 때
흥청의 채홍사는 아니로되
밤 늦도록 흥청망청 먹고 마셔댔다.

술이 거나해지자  손수 고기를 굽는

온계 문중 종손되시고, 종친회장 되시는-

 긍게 이집 쥔장과 함께 인증 샷

(2년 전 방문시는 통성명하며  함자를 알았는데,,,,)






 다음 날 아침

간밤 숙취로  '쌍것' 행태가 낭자허다.


 짱짱헌  사대부가의 종택 방문에 크게

어긋나는 산행 복장으로  결례 막심하나

여행 끝은  청량산 산행이다고

 양해를 얻자 아주 편하게 대하여 주신다.


 뒤 마루에 산행복으로 서계신 분 보이지롸!

소생 지인으로  진성 이씨의 온계 문중에서

 힘 꽤나 쓰신단다. 이번 소생 여행을 주선해 주시고

안동 선비문화를 소개하시겠다고 고맙게도 동행까정

소생이 천방으로 깝치는 데는 이 분 빽을

믿어서다.

( 조상의 못난 자랑이지만 소생의 관향 창녕 성씨를,

안동 양반가에선 잘 대접해준단 덕분에,,,,)





해장으로 북어국과

가양주를 대접 받고,,,





이어서

 사랑채에서

 종부님으로부터 전통차를 ,,,,




복장도 복장이려니와  

뼈대있는 이 집안  분위기와는 

한참 격 떨어지는 소생이지롸!

여튼 분에 넘치는 대접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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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으로 갑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유학자 퇴계는

조선의 유학을 정립하여,

백운동서원 운영하고 도산서당 설립으로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도 전력하였다더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4년 뒤인 선조 7년에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제자들과 유생들이

도산서원을 완성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선조로부터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사액 받음으로써 영남 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이후 안동 도산서원은 이황의 뜻을 받들어

주자의 성리학을 교육하여  사림의 수를 증가시켰으며,

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사림의 여론 형성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고,


조선시대의 대표적 서원이었던 덕분에 

 흥선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

안동 도산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등과

 함께 문을 닫지 않았다고.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



숭유척불 하시는


퇴계 선생께서 불교 최고 아이콘인 


연꽃를 흠모하였다.?


불교의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유학이 지배 이데올로기로바뀐 것 맞지롸!

해서

 스님들은 유생 관료들에게 박해를

 받았다고 배웠지롸?  그 당시 스님들은

종, 기생, 악공과 광대, 갖바치, 

아전그리고 관아 하인과 함께 

                                                   천한 계급으로 다루어졌다고 배웠지 아마.












 유교의 성리학을 내세워 권세를 재는

                                                     정철의 시를 보면 그 당시 양반 유생들이 스님


을매나 하시했는지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초장부터 중(놈)에다, 중장에 들어서면 

 하인 부르듯  냅뎃깔로 '저 중아!' 다.

 

 '물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우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섰거라 너 가는데 물어보자

 막대로 흰 구름 가리키며 아니 돌아보고 가노매라'



 백미  종장은 정철을 가뿐하게 무시해버린

 운수납자 (雲水納子)의 기품이 상큼하다.  

헌디, 성리학의 퇴계가 연꽃을 ..또

이 淨友塘은 완존 중냄새 풍기자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거

불교의 숫타니파타를 베낀 거자녀

소생은 그리 느꼈다.







서당인디

 훈장님이 안 계시니  소생이 쥔 노릇 해볼까나.



 서고랍니다.

 광명당



를 향해 나가는 출입문?

공자에서 주자로,

 성리학이 어떻고 하지만

道?

도와 덕이람 원조는 老子 아닝게벼!

유학 그 밑 바탕엔

道可道 非常道

(사랑한다고 웨치는 순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의 

아조 대하기 편한

노자 할아범의 그림자가 얼씬거린다.

-이것도 한  여행자의 생각일 뿐-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 전교당

 도산서원 현판은 한석봉이

어전에서 쓴 글씨랍니다







전시관에 들었다


중용에 나오는 어려븐 공자 말씀이단다.

君子는 愼基獨也라!

자고로 군자는 혼자 있어,

남이 보지 않는다고

 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는다고,,

 '혼자 있으면 별별생각이 다나지롱

   누가 안 봉게로 슬그머니 오줌도 싸고

  누가 안 봉게로  얼릉 새치기도 한다.

........

 아이갸나? 흐미한 것 같았는데 달 빛이 있었네

  컴컴한 줄 알았는데 날 다  비추는 게 있어버링마

  누가 다 봐버렸것네 오줌싼것도 새치기한 것도 잉!'



毋不敬 - 무릇 공경,공경하고   思無邪 - 생각에 삿됨이 없고,

毋自欺 -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愼其獨 - 홀로 있음을 삼가라.

유가의 사서 대학, 예기, 중용 등에 실린거디,

퇴계 선생이 죄우명으로 허셨단다.





네번째 讀書!

'말과 문자에 매달리지 마라?'

현금에는

'TV와 신문에 매달리지마라'

로 바꾸면

아주 맴에 둘 수신훈이네 그랴







호남의 나이가 한참 어린 기대승과 이율곡을 깍듯하게,

대접한 퇴계 선생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우리 괴등 때는 이 분들의 主氣論,

 四端七情은   안 배워 몰랐지롸?

배웠나?








여튼 어려버요!


편하게 기댈 요량의 완석이란디,,

혹 죽부인 처럼 껴안고

 주무실려 한 것 아닌가 몰러?



한참을 귀경험시로

공부하고 나갈 시간이다.


앞 광장


느티나문디 싶은디 그로데스크허다.



천광

하늘의 빛

 하늘의 뜻.

당,

저높은 곳을향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텅빈 하늘에 절대자가 있다???



그 하늘 보다

머리 위에 보이는 푸른 하늘과

바로 눈앞 솔향 가득한 숲에 에워 쌓인

이 시공간이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퇴계 선생과 바이 바이 혔습니다.


봐주시고 읽어주시니 보람입니다.

.....


다음은 주세붕의 백운동서원,

 곧 소수서원으로 가볼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