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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향기 - 유성룡

一雲 2017. 12. 19. 17:18

 
  기억에 뚜렸하게 남아있는 익살스러운 하회탈,

 그 탈을 쓰고 양반 거드름을 묵사발로 만드는 해학의 하회별신굿.

그러나

무엇 보다  서애 유성룡의 고향 마을이라 해서 진즉부터 들리고 싶었던 곳이다.

.낙동강 상류가  S자모양으로  마을주변을 휘돌아 간다 하여 하회(河回 )라고 했다고

 600년 간을 대대로 살아온   풍산 류씨의 집성촌으로  옛 모습을 오롯히 간직하여

지금으로 이어져 온 곳이다. 그래서

조선의 상류 전통 취락을 볼 수 있다는 이 만족감을 어찌 말로 글로 나타낼 수 있으랴!

 







첨 마주친 게 드넓은 주차장이였다. 

쫌 걷자 멀리  매표소로 가는 길이 보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 전통 고을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등 유명 인사도 들른 곳이니 관광객도 많으렸다.

 무료 셔틀버스로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우와!

길 모퉁이에 아득한 옛날의 정겨운 목화밭이~

이 마을은 아직도 목화솜으로 이불을 만드나?

옛날에는  목화밭 일이 아낙네들의 큰 일이였다.

서양도 다를 바 없었던지 ,,,,,왜 그  Cotten Field란 노래

젊을 때 흥겹게 불렀던 목화밭   Cotten Field가 생각났다!



When I was a little bit of baby
My mama would rocked me in the cradle
In them old cotton fields at home


It was down in Lousiana just far a mile from Texarkana
In them old cotton fields at home.

조영남, 윤형주가 이 노래를 가사 내용을 다르게  번안해서 불렀지요.

추억의 한 귀퉁이를 들여다 보며 목화~밭 목화밭을 올려본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 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 이라네
밤 하늘에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한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


 매표소 앞에 왔다,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의 아이콘 하회탈.

처음 익살스러운 표정을 그려낸 이가

누군지 몰라도 그 센스가 부럽다.

소생은 이 탈의 웃는 표정을 보면

'외부 힘에 억눌리지 말고 가뿐하고

 유쾌하게  삶을 영위하라는 ..'

말을 해주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이다.



매표소 옆 전시관에 들려 관람 기본 지식과 정보를 얻고,


 


옛 초가집과 기와집이 긴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된 곳이다.

포근하고 안온한 평화로운 기운이 감돈다.

이런 곳이 명당이구나 싶었다.









매표소 앞 건너 세운 바위에 새긴

 마을 이름표 '한국의 역사마을  Hahoe'

입장료?

소생이야 지공거산디  당연 무료아니겄어!

에험~



마을 초입

날씨 한질라 따봉이다.

좋은 날씨가 받쳐주면 그 여행

 99.9999 프로는 성공이고 축복이다.

가을바람에  황금빛으로 살랑이는 벼논이

이리 정겹고 평화로울 수가....

싸드락싸드락 걸으니 세상만사 낙원이고 유토피아다.




 





찬찬히

종가길로 접어들었다.






옛 흙담길의 골목도 고요하고 평화롭다. 

공기 좋고, 날씨도 좋고 짱이다.




 풍산류씨의 대종가인

 양진당(보물306호)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저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에서 입암(立巖 )은 소생이 가고자 하는

서애 유성룡과 형인 류운몽선생의 부친인 류중영선생의 호다.

 따라서 양진당을 입암고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사랑채는 고려 건축양식이며 안채는 조선 건축양식으로서

고려, 조선 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임진왜란 때 일부 소실된 것을 17세기에 중수하였단다.

하회마을에서는 드물게 정남향의 집이다.
북쪽에는 2개의 사당이 있는데, 정면의 큰사당은 입암 류중영 선생의 불천위 사당이며

또 하나가 류운룡 선생의 불천위 사당이란다

(공신이나 대학자 등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를 말하며 4대조까지 올리는 제사의

 관행을 깨고 후손 대대로 제사를 올린다.). 


 문화해설사의 위와 같은 설명을 듣고선 만약 소생이

 이곳에 산다면 영락없는 쌍것이겠구나 싶었다.

'불천위사당이네, 제사는 4대조까지 모시네' 등이 금시초문이라,,,,,,,

(속으로 거의 매달 제사와 그 준비로 날새것네 험시로)



충효당이다.

잘 아시는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조선 선비의 향기가 흐르는

고택이고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란다.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서애 생존시의 집은 아니란다. 

 관직에서 파직당하고 낙향했을 당시의 집은  단촐했다고 한다.

 유섣룡은  초가 삼간에서 타계했다고. 그러니까 이 충효당은 서애 사후에 지은 집이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 선생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으며, 바깥마당에 엘리자베스2세 방문 기념식수가 있다.

 

충효당 앞에서 한 폼 잡고


후세는 이순신과 유성룡의 관계를

물없이는 못 사는 고기의 관계

수어지교 (水魚之交)라고 했는데

유성룡이  이순신 장군을 애도하며 지은 시

‘애이통제(哀李統制)’를 보면 결코 지나친 비유가 아니다.

 

閑山島古今島。    한산도 고금도.

大海之中數點碧。 큰 바다 속에 두어 점 푸르렀네.

當時百戰李將軍。 이때 백전노장 이장군은

隻手親扶天半壁。 한 손으로 친히 하늘 한쪽을 붙들었네.

鯨鯢戮盡血殷波。 적을 무찌르니 피가 파도에 번지고

烈火燒竭馮夷窟。 맹렬한 불길은 풍이(馮夷) 같은 소굴을 다 태웠네.

功高不免讒妬構。 공이 높아지니 시기와 모함을 면하지 못했으니

性命鴻毛安足惜。 털끝 같은 목숨 아낄 것 없었지!

君不見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峴山東頭一片石。 현산(峴山) 동쪽 한 조각 타루비(墮淚碑)에

羊公去後人垂泣。 양공(羊公)이 죽은 후에 사람들이 흘린 눈물을

凄凉數間愍忠祠。 쓸쓸하도다, 두어 칸 충민사는

風雨年年毁不修。 해마다 비바람에 훼손되어 수리 못하는데

時有蜒戶呑聲哭。 섬사람들이 소리 없이 우는구나.






두 명문가를 나와 마을 주변 길을 따라 싸드락싸드락 거리며 가을 풍경을 한 껏

눈 안으로 , 가슴 속으로 넣었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마을 센터의 삼신당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구비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향이 일정하지않다.

일반적  마을들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큰 초가집을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강쪽으로 나와서 둑길을 걸었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논을 가득채운 벼가

황금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여행에 빠질 수 없는 그 지방의 먹거리

유명한 안동찜닭과 간고등어 정식중에 고민하다가

안동찜닭으로 직행

증말 맛이 있었다.



다음은 유성룡의 스승이자 영남학파의 태두 퇴계 이황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