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내 벗이 몇이냐 하니
'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東山)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
상서로운
첫눈이 내리는 날
다섯 벗으로만 두지 않고
행여
소생까지 벗으로 넣어줄까 싶어
남도 해남으로 갔다.
괴등 때의
고산 윤선도를 만나러 갔습니다.
과시 속세를 떠난,
物外의 仙景이였습니다.
벌교 휴게소.
상고대에 내린 첫 눈이
남도 길에 긔 더욱 운치를,,,,
정읍 백양사를 지나고
고산의 오우가와 함께 괴딩 때
접했던 정읍사!
''
'달하 노피곰 도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
어그야 어강됴리.'
고창 읍성에서 내렸다.
느긋하게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성밟기를 한다.
진즉에 마신 술로
볼그족족 취기가 오르니
근처의 선운사에서 보고
필이 팍 꽃인 김용택님의 시가
떠오른다.
........
'그까짓 사랑 땜시
다시는 울지말자
고까짓 여자 땜시
다시는 울지말자
눈물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어버렸다.'
영광하면 굴비 아닐까 봐서?
햇발에 돌굴비를 말리고 있었다. ㅎㅎ
굴비정식에 탁주 한 되빡 걸쳤다.
저어그 보이는
저기 저 산이
거년에 올랐던 월출산이렸다!
완도의 명사십리.
水
구름 빗치 조타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 뉘 업기는 믈 뿐인가 하노라.
모래도 곱고,
바다물 빛도 곱디 곱고
옛날의 완도라함은 완도읍이 있는 큰 섬이고
지금의 완도라 함은 완도읍이 있는
한개의 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에서와 같이 보길도, 노화도 그리고 청산도 등
주변 여러 섬을 포함시킨 완도군을 지칭하는 것이라 한다.
해남에서 완도읍 군외면으로 연륙교가 맹글어져
승용차로 들어왔고
완도읍에서 노화도까정은
위 만세호를 타고 다도해 구경험시로
캔맥을 입에 달고 갔지러,,,
노화도에서는 다시 차로
연륙교를 타고 목적지 보길도로..
완도는 국내 70% 가량 전복,다시마를 생산하는
청정 해역을 자랑한다.
노화도의 동천항에 내리자,
디딜방아가 맞는다.
보고 싶고
보고 싶었던
보길도로 들어선다.
버스에서 내려 소나무 숲 속을 20분 걷는다.
이 거구나.
이 거!
인생칠십고래희란 그 시절에
고산이 팔십을 넘어 산 게 이 거구나!
바로 이 거 청량한 공기!
들이쉬는 숨이 맛있다.
소나무 숲이 끝나고
약간 심한 경사를 오르자
단단한 바위로 둘러진 자그마하고 소박한
석실이 있었다. 이름하여 동천 석실,
고산이 여기서 기거하며 羽化登仙을 위한
음풍월을 하며 신선 생활을 누렸다니,,
석실 바로 아래의 침실.
상당한 과학 지식을 지닌 건축가의
면모가 옅보인다
石
곶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아닐손 바위 뿐인가 하노라.
뛰어난 건축가요 조경의 대가인 고산의
솜씨가 여지없이 드러난 세연정- 洗然停-을 본다.
보시라!
소나무 기품이 기가 막혀,,,
松
더우면 곶 피고 추우면 닢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을 글로 하여 아노라.
반듯함.
꼿꼿함 -
조선의 선비정신
竹
나모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月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중에 광명이 너만한 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소생이 언감생심 여섯 번 째 벗으로? 지송망극합니다.)